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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의 소리

그림할망들의 지상전, 공중전

최종 수정일: 4월 11일

할망들의 비행드로잉

제주의 한 마을에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들이 있다.

흙을 만지며 살아온 시간들밭에서 돌아와 종이를 펼치고손끝으로 마음을 푸는 사람들.

그들은 '화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그림은 그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어

종이 위엔 살아낸 날들이 조용히 녹아 있었다.

이들의 첫 전시는 땅에서 시작됐다.굽은 허리와 떨리는 손, 함께 나눈 말 없는 시간,

그리고 밭에서부터 이어진 기록들. 지상전—그건 삶의 무게를 안은 예술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망들이 섬을 떠났다.넷플릭스 초대로 서울 전시를 위해 비행기를 탔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공항의 탑승 게이트를 통과하고,비행기 문을 지나 자리에 앉는 그 모든 과정이

마음을 덜컥 흔들었다. 비행 중, 작가로 초청받은 사실을 떠올렸다.

이제 정말 ‘작가’가 되었구나.

어떤 예감을 읖조렸다.

최근 몰입해 있던 신작 위로, 이 비행이 겹쳐지며다른 관점의 그림이 나올 것 같은 예감.

그리고, 그림할망의 여정을 따라올 사람들도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예감.


공항에서부터 몰려든 시선과 카메라.그건 예고편이었다.

실제로 소막할망은 꽃무늬 버선을 신고 길을 나섰고,

자신의 소를 그린 스카프를 덮어쓴 모습의 출현은 퍼포먼스였다.

공항패션은 선언이었다.나는 작가다.나는 예술이 된 몸이다.


기내에서 고목낭할망이 배시시 웃으며 토마토주스를 주문하자

할망들 모두 토마토주스를 따라 시킨다.

“우린 토마토라.”취향을 통일해버리는 그 재치에

기내는 순간 공동체가 된다.

웃음이 재미난 일의 예고탄처럼 활싹 피어난다.


무지개할망은 구름을 뚫고 무지개를 뚫고 날아오를 때

“이녁이 빛 소그로 날아.”

“이녁이 훤허게시리 빛이 되언”

할망의 무게가 천천히 더 공중으로 부양되고,존재는 점점 투명해진다.


이건 다른 차원의 예술이다.

그림할망들의 지상전, 공중전. 그리고 우주전

빛 속으로 들어간 자만이 건너갈 수 있는 세계.

초록할망은 둥근 창문 너머로

작아지는 땅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저디 아래를 보민 나 살아온디가 족아져”


그 시선으로 종이를 펴고 무언가 그림을 그린다.

그림할망들의 비행은

단지 이동이 아니라 도약이었고,

삶이 솟구치는 초월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여정의 가장 큰 기쁨은

그림할망이라는 공동체의 동행이다.

오랜 마을 친구, 그림친구들과의 동반여행.

그림선생이 여는 길에 대한 신뢰.

어디로 가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버섯발로, 함께 나선 길.


그림할망들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들의 언어는 그림이고,그들의 그림은 고유한 세계다.





그리고 이제,그들의 우주로 가게 된다.대중들 속으로,

빛과 색의 언어로 천천히 스며들며.

이것은 기막힌 신들의 여정이다.

지상에서 공중을 지나 우주로 향하는

폭싹 속은 화가들의 이름 없는 신화다.


-최소연 (미술가,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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