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흘포럼
- drawingm
- 5월 8일
- 13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8일

선흘그림작업장_선흘포럼 첫 번째 집담회
2025. 5.3 오후 4시
사회: 조한혜정
발제: 최소연과 그림할망들
조한 : 첫 번째 포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두 시부터 오프닝 모임을 해서 다들 피곤하신 듯해요. 포럼은 한 시간 정도로 끝낼게요. 그간 선흘 그림 할머니들에게 있었던 일을 잠시 소개하죠.
두어 달 전, 넷플릭스 홍보팀이 선흘 그림 할머니들을 찾아왔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방영 전이었어요. 드라마가 제주를 배경으로 했으나 실은 육지에서 많이 찍었고 우리 할머니들의 활약을 인상이 깊게 보셨는지 홍보팀이 할머니들께 먼저 보여드리고 그 반응을 찍어서 홍보물로 쓰겠다고 오신 거죠, 다섯 명의 반짝거리는 청년들이 큰 모니터와 여러 개의 마이크와 간식과 선물까지 챙겨와서 삼촌들이 신나게 드라마 1, 2편을 보셨어요. 늘 놀라지만 삼촌들의 눈썰미와 유머러스한 반응이 놀라웠어요. 할머니들은 박장대소하거나 안타까워하면서 아주 즐겁게 드라마를 보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들은 공식 상연 전까지는 내용은 남에게 말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비밀 지키기 서약서에 서명도 했었답니다. 아주 흥분된 일이 생긴 거지요. 홍보팀은 할머니들의 그림을 서울에서 전시하겠다고 하면서 떠났고 그날부터 할머니들은 마음에 남는 장면들을 열정적으로 그렸죠. 할머니들의 그림 솜씨가 놀랍게 좋아졌고 마침내 할머니들은 동방박사처럼,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처럼 들떠서 상경하셨어요. 팝업이 열리는 영등포의 작은 극장에서 친척들도 만났고 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탤런트도 만나셨죠? 행사가 끝나고 관객을 다 보낸 후 그림 하나하나 찬찬히 보면서 감동하고 안아주는 ‘애순’(아이유)를 만나 기념 촬영도 하시고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호텔로 달려와 정겨운 손자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간 ‘관식’(박보검)도 만나 사진을 찍고 오셨어요. 참 할머니들을 부축하며 서울을 다녀온 그림 작업장 도움의 손, ’선녀‘들과 함께 가셨어요. 기자들도 동행하시고, 전부 40명 대부대가 갔었지요? 서울 다녀와서 삼촌들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래서 오늘 이 전시가 열린 거예요.
일단 서울 다녀온 삼촌들이 다 계시니 삼촌들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삼촌들 긴장하지 마시고 드라마를 보니까 어땠다, 서울 가서 애순 (아이유) 만나니까 어땠다는 이런 얘기를 생각나는 대로 해 주시면 되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삼촌도 계시니까 감안하고요. 삼촌 이야기 듣고 삼촌 모시고 서울 다녀오신 선녀님들, 그리고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신 분들 이야기를 듣는 순서로 진행할게요. 삼촌들, 그림 그릴 때 어땠는지 이제 화가가 되셨으니까 생각나는 대로 고라(이야기) 해 주세요.
강희선 삼촌 : 다 그림 선생님 덕분이지. 선생님 아니면 못 했지.
조한 : 그런 공무원 인사말처럼 하지 마시고 그림 그리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 그림 이 전시된 것을 보니 어떤지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희선 (88세 초기 제자) : 다 그림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선생님 덕분. 다 선생님 덕분!
조한 : 그림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시나요? 내가 볼 때는 별로 안 가르치고 삼촌들이 알아서 그리던데. 가르치는 것 못 봤는데요.
허계생: 우리 그림 선생님이요? 안 가르쳐줘요. 나는 진짜 그랬습니다. 그림 그리러 가면 머리는 이렇게 그리고 코는 이렇게 그리면 된다, 이런 식으로 알려줄 줄 알았는데 안 가르쳐주는 거예요. 한번 그려주지 않을 건가, 눈을 어떻게 그리면 되는지 좀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 눈 그리기가 너무 힘듭니다.” 하면 “눈을 막 크게 그리세요.” 할 뿐 안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그림 선생님은 가르쳐주지 않고 이렇게 그냥 보기만 하는구나. 근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본인이 고민해서 해야 머리에 오래 남아.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그때 잘 그리겠지만 잊어버릴 텐데 가르쳐주지 않으니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연습해 보게 되는 것을 알았어요. 다른 삼촌들 그리는 걸 보면 너무 마음에 와닿고 좋은데 생각해 보면 그 삼촌들은 5년을 그리시거든요. 집에 오면서 생각해요. 아 세월이 가면 나도 그만큼 그리게 될 테지. 그래서 부지런히 그릴 뿐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내 마음을 그냥 넉넉하게 가지고 가기로 한 겁니다.
김옥순 : 그냥 자기대로 해야 하는데 아 선생님이 또 그림을 걸어주니까 기분이 좋아서 아이고 열심히 그려야겠다. 아들한테 아유 야 나 그림으로 못 그리겠다 하면 아들이 막 그림 쓰는 크레파스와 물감 사 오고 그림도 팔렸다 하면 기분이 막 좋고.
고순자: 열심히 하다 보니 조금씩 늘고, 그 못난 그림을 사 가신 분도 있어 막 좋았지. 몇 년 하다. 2학년 짜리처럼 그리지만 아이고 잘했어. 잘했어, 그러니까 그림 연신 그리게 되고 막 추어주니까.....
이연희: 근데 삼촌 그 베개 그림. 첫날밤에 가슴이 쿵쿵 뛰던 베개 그림 아주 좋던데. 스물두 살에 결혼하셨다고 했는데 연애하셨냐 애순 관식처럼 하셨나 물어보니까 결혼식 날 처음 만나신 거래요.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결혼하셨냐? 그러니까 그 결혼하는 날 보셨다는 거예요. 뭐 얼굴을 제대로 본 거는. 그래서 여기서 조사를 하고 싶어졌어요. 결혼 전에 나는 예순이 관식처럼 연애를 해봤다는 삼촌 계시나요?
김인자 : 옛날엔 연애가 없었어.
이연희 : 삼촌도 결혼식 날 처음 보신 거예요? 이 ’폭싹‘의 애순과 관식은 환상인가? 애순이
52년생이고 삼촌은 37년생이니 다른 세대네.
허계생 : 그 시절에는 연애한 분도 있고 안 한 분도 있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차도 없으니까 동네에서 그냥 친해지기도 하고 추울 때 썰매 타면서 사귀는 일도 있지. 나는 한번 만난 뒤 약혼식을 한다는 거라. 그때 여기서 시내라하면 세화였어요. 송당 세화 거기서 시장을 보고 다 오니까 거기만 가는데, 시에 로터리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시내 반지 사러 만나자고 해서 금은방 근처 로터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무슨 전화가 있나 그 사람 얼굴도 생각이 안 나고. 차부에 가서 그때 동양극장 그 모서리에다 가만히 서 있으니 어떤 얼굴이 하얀 사람이 있어. 우리 신랑은 그때 서울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서 아주 그냥 얼굴이 하얗고, 제주에는 그런 사람 나는 못 봤어요, 시내를 안 다녀서 근데 얼굴도 하얗고 진짜 키도 크고 멋진 사람이더라고. 그런데 이제는 늙었지만 그때 막 멋졌어요. 근데 그 사람을 암만 봐도 못 봐. 자기도 저만해서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는 아가씨가 있으니 와서 송당에서 왔나 물어 예 하니 그냥 손잡고 시아주버님네 집에 갔어. 당시에는 반지 받으면서 결혼한 사람이 별로 없어. 근데 그때 금반지와 쌍가락지 해서 두 개를 해 주더라고요. 이런 것 받아 결혼을 해보니까 그냥 4개월 만에 군대를 뺑 하게 가버렸지. 그 후에 시부모들이랑 살다 임신한 것도 몰랐는데 아기가 들어선 거라. 그렇게 살아온 거라. 그렇게 살아온 것이 책으로도 나왔지. 말도 마. 해녀도 밭일하는데 물질하고 밭일하고 해녀는 더 고생했죠. 해녀는 물 때 보고 바다로 가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참 먹을 게 귀했거든요. 그 애순이 쌀 떨어진 장면 보면서 선생님이 “삼촌 그때 쌀 떨어져 본 적이 있습니까?” 하더라고. 그냥 가슴이 턱 막힌 거라. 서방이 너무 말을 안 들어. 일 하자고 하면 한 며칠 막 달래야 하고 일 하다가 발에 흙이 들어갔다고 그냥 집에 가. 약을 좀 쳐보려면 장화에 물이 들어갔다고 집에 가요. 막 호강 쟁이. 살려니까 애가 다 끊어지는 거라. 그런데 애순 어멍은 두 번째 간 자리더라고. 그 남편이 애순이를 데리고 간 거 아니? 시집을 그러니까 그 어머니도 눈치 빡 매기재 보니까 얼마나 고생했을까?
애순이가 그 쌀 없어서 하는 걸 보면서 그때 생각으로 집에 가서 빡빡 울었어요. 남편은 군인 가고 어려운 살림이지만 시아버님이 돈을 다 쥐고 살아 시어머니는 신 하나 사는 것도 못 해. 그 시부모한테 그 돈을 타서 내가 어떻게 아기를 병원에 데리고 다닐까, 생각하니 기가 막혀. 스무 살에 서방 군인갈 때 장사했거든. 쌀장사 유채 장사 새 지붕 이고 밭떼기를 사고 그대로 가면 돈이 엄청나게 벌어질 것 같았는데 이놈의 서방이 군대에서 온다는 거라. 내가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온 거야. 오지 말면 내가 혼자 돈 벌어질 건데 아 죽어도 온다는 거예요. 서방이 말 안 들을 그것을 아니까 그 돈을 사돈 다 갖다줘 두고 이제 서방만 끼어 살 생각을 했거든. 서방이 오니까 무신 저 농장 멍에다 뭐 하겠다. 집 지었다. 돼지 사 왔다 이러면서 두 번을 망하더라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빚은 엄청나지. 쌀 없어 외삼촌네 조금 꿔서 먹으면 또 꾸려 못가. 한번은 동생이 잠 자고 있을 때 문을 툭툭 쌀을 져다가 놓고 간거야. 어려운 시절을 겪어본 사람만 알지. 그렇게 안 살아본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거. 그러면서 새끼 다섯을 키웠어.
박인수: 그때는 중매로 결혼했는데 한복의 면사포 쓰고 했어. 리 사무소에서 결혼식은 지내고 택시 하나로 갔다 왔다 했지. 우리 위에 어른들은 종들을 쓰고 가마 타고 결혼했고. 우리 아저씨는 나 아기 세 개 낳았는데 스물일곱에 소를 팔아라 해서 나는 소를 안 팔고 저거 돈 날 거예요 했어. 그런데 이번에 서울 간 것, 선생님이 어떻게 그렇게 재주도 많아 이 큰 섬에서 우리가 초대를 받게 되었나? 나 막 궁금해. 우리 아저씨도 그것이 너무 궁금하다고 해요.
조한 : 요새는 유튜브나 인스타 같은 게 있어서 삼촌 그림 그린 것을 모두가 다 볼 수가 있어요. 삼촌들 그간에 그린 그림이랑 인간 극장에 나간 것 등이 너무 대단해서 그분들이 찾아온 거예요. 여기서 연락한 것이 아니고. 그때 찍으러 온 젊은 친구가 5명 왔잖아요. 그분들이 홍보회사를 하는데 아주 똑똑해서 삼촌들을 알아본 거죠. 우리 동네가 한국에서 제일 재밌는 동네 중의 하나일 거예요. 대단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할머니 그림 미술관처럼 이렇게 신선한 일이 있을 수가 없죠. 딱 자기네 홍보에 딱 맞으니까, 연락이 온 거죠.
박인수 : 다들 잘 그렸다는데 자신은 없어. 아 손이 이거 똑바로 그리지 못하고 그냥 벌벌 이래. 손이 절대 바르게 나지 못하고 막 비틀어지게 가고.
조한 : 그때 팔도 다치셨잖아요?
박인수 : 팔 수술해서 왼손으로 그렸지. 그림 시작된 한 달 반 만에 그렇게 되어서 삐뚤빼뚤해서 왼손으로 점 찍어 그렸지. 선생님이 해보라고 해서. 선생님은 큰 그림 그리면 손님들이 사 간다고 하고 손님들도 우리가 사 간다고 하지만 잘 팔릴까?
고순자 : 그러니 돈 비싸게 받지 말고 팔아. 그림들 집에 쌓아두는 것이 싫어. 누가 가져가면 좋지. 너무 많이 받지 않으면 좋겠어. 큰 그림이 800만 원이나 하는데 너무 비싸지 않나?
조한 : 그림값은 정가가 아니고요. 원하는 사람 마음이에요. 마음에 들면 많이 주고요. 그만큼 값어치 있게 보게 되고요. 또 기업에서 살 때와 개인이 살 때가 다르고요. 예를 들어서 Netflix 회사에서 자기네 건물에 걸려고 사겠다 하면 800만 원이 아니고 5천만 원에 팔아도 되고요. 손자가 사고 싶은데 용돈 모은 것이 20만 원밖에 없다면 그것이 값일 수 있어요. 그림값을 매기는 기준도 매우 다르니까 그림 선생이 좀 더 설명해 주실래요?
최소연 그림 선생: 그림 잘 파는 화상들이 있어요. 그 세계는 그 나름으로 오랜 역사가 있고 그림값을 막 올리기도 해요. 주식 투자하듯이 투자가 돼서 그림을 샀다가 두 배가 되게 하거든요. 근데 저는 그런 세계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어요. 저희 아빠는 그림 재료상을 하셨고 엄마는 화랑을 하셨어요. 근데 엄마는 지역사회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들 그림을 팔아주는 걸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엄마는 청년 작가들을 후원하는 후원의 마음으로 화랑을 운영하셨어요. 그 때문에 엄마는 지금도 저한테 그림 비싸게 받지 마라 하셔요. 할머니 팬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면서 가격의 방향을 정해 주셔서 그렇게 해보고 있고요.
첫 그림 가격을 어떻게 정했냐면 아까도 들으셨겠지만, 김인자 삼춘 아드님이 할머니 그림을 사진 찍어 가셨대요. 할머니가 여름 반팔 붉은 바탕에 하늘하늘한 흰 반팔남방 그리신 건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본 사위가 200만 원을 보내오셨어요. 그래서 그림값으로 인자 삼촌의 그 정도 크기의 그림을 200만 원으로 정했던 거예요. 이것은 선흘 우리 동네의 방식인 것이죠.
우리 선흘 양반들이 통들이 크세요. 인자 할머니랑 강희선 할머니랑 카페애옥에 놀러 가서 커피를 마시면 할머니가 딸한테 전화해요. 돈 30만 원을 보내라 커피값으로. 그러면서 그날이 그림할망들에게 기분좋게 인상적인 하루로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 거죠. 제가 여기서 배웁니다. 육지 방식으로 여기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마음은 없고요. 할머니들하고 의논해서 그림 구매자가 있는데 삼춘 그림값을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물으면 그림값은 내가 정할거다 하세요. 우리 인자 할머니가 정할 거래요. 작년에도 행사에 오신 분들이 심심해하니까 홍태옥 삼춘이 즉흥적으로 초상화 그려주는 거 했거든요. 만 원씩 줄을 많이 서니까 김인자 할머니가 똑똑하세요. 2만 원 받아도 될 것 같아, 홍태옥이는 그림 그리고 이녁은 돈 받는 일 할 만하민 돈도 반반 갈라갖고 좋을껴 그러셨어요. 저는 그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두 분이 알아서 하세요. 그 그림값 띄워서 우리가 뭐 할 것도 아니고 해서 그때 초상화를 많이 그리셨어요. 많이 팔렸죠. 그런데 할머니가 그걸 다 또 기부하셨어요. 그래서 그림 할머니들 그림판-캔버스 사서 나눠 드렸죠. 그래서 선흘은 선흘 나름의 선언하는 방식이 있는 것 같고요. 서울에서 폭싹속았수다 팝업전시할 때 그림 사시는 분들이 좀 오셨는데 몇 분이 그림값이 너무 싸서 투자 가치가 없습니다고 하셨어요. 아까 조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큰 회사에서 사 간다. 하면은 그런 가격에 팔고 여기 오시는 분들이 오일장 보듯이 동네 구경 마실 오셨다가 그림을 사시겠다. 그 손주들이 그림 산다고 하면 할머니들한테 여쭤봐서 적당한 가격에 적절하게 보내면 되죠. 그런 방식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신성옥 : 선생님 마음, 이제 내가 알았어.
최소연 : 사실 전시에서 소막할망 그림이 화제입니다. 가격이 가장 고가예요. 삼춘은 전복 시리즈를 많이 그리셔서 전복 이야기가 떨어졌어요. 더 그릴 것도 없고 어쩌나! 했는데 저한테 살짝 하시는 말씀이 함덕해녀촌 식당에 가서 망사리 그림을 사진 찍어주면 좋겠데요. 그 장면을 본 기억이 나신 거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요? 제 학생의 소망이고 할머니 마음이니까 이루어드리고 싶었어요. 해녀촌에 어머니와 가서 전복죽을 사 먹으면서 보니까 저 해녀 망사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해녀들한테 물어봤어요. 저거 하나 파실 수 있어요. 그랬더니 안 판대요. 왜 안 팔아요. 물었더니 각자 한 사람씩 만든 거래요. 자기가 물질할 때 쓸 망사리가 있는 거라면서 팔지는 않는데요. 만들어줄 수는 있대요. 근데 너무 바빠서 만들 시간도 없대요. 근데 왜 그러냐고 물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죠. 저 망사리를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그 해녀분이 그냥 빌려줬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한 30호 정도 저 반 크기 정도 그림을 그리실 때였는데, 망사리를 그림판에 대고 보니까 두 개는 필요하겠더라고요. 판 2개를 붙였죠. 그래서 그 위에 망사리를 탁 엎어 놓으니까, 할머니가 본뜨듯이 그리실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림이 쉽다고 얘기하시는 건 거짓말이고요.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 전날 그렸던 전복은 전복 껍데기 할머니 집에 갖고 가서 망사리 위에 엎어 드리고 요거 요렇게 뻗어서 그리시면 어렵지 않아요. 다음 날, 할머니 집에 놀러 가봤더니 전복 그린 게 영 생기가 없고 부실해 보였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니 냉동실에 전복이 많이 있다면서 꺼내서 그리는데 냉동한 색깔은 하양하고 재미가 없잖아요. 이거 녹여서 그려보세요 했더니 그리셨죠. 또 망사리 안에 문어를 그리고 싶어 하셨어요. 할머니 신촌에서 처녀적에 물질하셨는데 문어를 만나면 운이 좋은 거래요. 그래서 대화를 이어가보니 문어 들어 올렸었을 때 그 기억이 있으셔서 문어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가위로 오려서 패턴을 드렸더니 그걸 놓고 그리셨죠. 삼춘이 처녀적에 바당 속에 잠수해서 두 손으로 직접 잡아본 바다의 생물을 망사리 위에 그리신 이 그림. 여러분 800만 원 비싼가요?
조한 :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가르신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교육법이 있네요. 처음 그림에 전복을 적당하게 그려 놓으셨어요. 전복이 좀 부실하다고 했더니 삼촌이 냉장고에 전복 있다고 했고 선생님이 꺼내오라고 해서 관찰을 엄청나게 시키는 거예요. 실제로 이렇게 그리라고는 하지 않는데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을 엄청나게 하는 거였네요. 그것을 한참 보게 하고 궁리하게 해서 밤에도 그림을 그리시는 거지. 저 문어 하나는 너무 잘 그리셨어요. 다른 놈은 좀 부실한 듯한데 조화가 잘 되네요.
최소연 : 자본주의 방식으로 살다보면 눈으로 관찰을 하기보다 사진으로 틱 찍어서 저장을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안 꺼내보죠. 무한으로 찍고 잊어버리는 거죠. 두 눈으로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바라보다보면 그 대상을 기억하게 됩니다. 기억하고 그림으로 그리면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죠.
전복망사리를 그린 날도 그랬어요. 할머니가 그림 판을 바닥에 눕혀놓고 망사리를 그리셨어요. 허리가 꼬부라진 89세 할머니니까 큰 그림을 벽에 세워두고 그리면 뻐친데요. 눕혀 놓으면 걸어다니면서 그리니까 밭일 하듯이 마음냥 해볼 수 있데요. 그렇게 그ㄹ린 망사리 그림 위에 문어와 전복을 올려놓고 차분하게 자기 속도로 정성을 들여 그리신 거예요. 사실은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거죠. 제 교육철학이 있다면 우리는 ‘그림 그리는 인류입니다’예요. 낮에 동굴 밖에서 본 들소를 동굴 벽에 커다란 벽화로 그리는 인류. 스스로 두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는 인류. 뇌와 손과 마음으로 기억하게 된 장면을 손에 잡은 목탄으로 기록하는 인류. 그리려고 하면 며칠을 걸려서 들소를, 문어를 잘 찬찬히 보면서 훌륭한 관찰을 해내야 하는 거죠. 내가 뭘 보고 싶은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고 싶은가 궁리하게 하는 거죠.
저는 이 과정을 장면을 품는다고 해요. 저도 일상적으로 살아가다가 스치는 어떤 장면이 있으면 서둘러 그리지 않고 일단 마음에 품고 며칠을 요리조리 관찰합니다. 내가 이 장면에 왜 끌릴까? 이 장면이 내게 무슨 말을 거는 걸까? 그러다보면 하나의 문이 열립니다. 임상춘 작가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하나의 문이 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그림은 제게 소리를 내는 문입니다. 소리 뿐 아니라 오감이 살아있는 우주이지요. 해녀가 엮은 망사리의 부피와 문어를 바당 속에서 손으로 잡은 꿈틀거림, 전복을 손에 쥔 기쁨, 소라의 기하학적 형태, 숨을 참고 물 위로 올라와 내는 숨비소리, 바다 내음이 복합적으로 기록된 우주. 이번에 폭싹속았수다를 주제로 엮는 책에도 그림해설을 넣고 있어요.
조한 : 아까 고순자 삼춘이 굴비 든 해녀 어멍 그림 보시면서 자기가 봐도 너무 잘 그렸다. 내가 다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셨어요. 그리고 그전에도 선생님이 뭐라 뭐라 하니까 “아 말하지 말아요. 내가 지금 다 생각이 있어요”라고 하시던 게 생각이 나네요.
조한 : 서울에 갔을 때 재미난 에피소드 없을까요?
신성옥 : 밤에 박보검 (관식)이 인사하러 온다니까 씻고 들어가서 침실에서 주무시려고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화장을 곱게 하고 립스틱 짙게 바르시던 생각이 나네요. 특히 두 분이 심했어. 하하 삼촌들이 관식이 이쁘다고 쓰다듬고 잘생긴 것은 아셔서 너무너무 그게 웃겼어요. 정말 좀 뻔뻔하지 않으세요, 야밤에 10시 반을 넘었는데 기억이 나시는 거예요?
이명서 : 안녕하세요. 저는 할머니 작가들과 일주일에 한 번 그림 수업을 같이하는 이명서이고요. Netflix 연결이 안 되어서 전편은 못 보고 YouTube와 쇼츠로 봤었어요. 그 짧은 영상에서도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남겨 있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드라마를 보시면서 막 펑펑 울었다고 하는데 저도 너무 슬퍼서 울었어요. 보편적인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지극한 사랑 이야기더라고요. 또 어떻게 보면 또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야기를 너무 잘 만들어낸 작품이었어요. 드라마가 대중 예술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사실은 대중 예술과 어떤 전통예술의 경계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줄 수도 있고 또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고요, 우리 삼촌들이 그림 그리신 거를 보면서 작년에도 [기막힌 신들의 세계] 전시를 하면서 놀랐었는데 할머니들이 심장에 상당히 물이 올라왔어요. 물이 오르셔서 막 그림을 그려내시는데 진짜 그 드라마에 있는 그 포인트들을 너무 잘 잡아내시더라고요. 작품을 보고 같이 공감하고 또 우리 선흘 할머니들이 개인의 이야기와 작품 속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예술로 승화시켜 낸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 같아서 옆에서 보고 경험하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한 : 폭싹 너무 감동으로 본 분들 또 이야기하실래요?
김상아 : 너무너무 감동하면서 봤어요. 저는 서울에서 요즘 봄이잖아요. 봄바람이란 이름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21년째 운영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봄바람 제주 법인을 만들어서 제주에서도 또 이런 마을의 이야기나 이런 것들을 발굴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여기로 왔는데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있어요. 그림 보면서 막 좋은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생명력이 솟아나는 느낌, 이 동네에 아이들도 아주 많다고 들었거든요. 아이들과 할머니들이 어우러지는 이곳에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또 입양한 그림, 서울에 가져가서도 계속 보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거 많이 느끼고 싶습니다.
오현미 : 표선 가시리에 살고 있고 선흘에서 활동하신 22년도부터 해마다 전시를 봐왔어요. 지금은 강원도에 살고 있는데 여기 “사람이 살암시믄 살아진다”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저기 그 무수(무우) 그림에 보니까 “그리면 그려진다.” 이렇게 쓰여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아, 이게 같은 뜻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알겠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이때까지 저는 막 이걸 이루어야 해 이거 계획대로 가야 되고 이거를 꼭 성취해야 해. 이런 방식으로 살았는데 “살암시믄 살아진다” 이게 그려진 그림 표현으로 이해되는 것은 도대체 뭘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리고 또 무화과는 손질 안 해도 나무에서 계속 열리는데 그냥 주니까 따먹으면 된대. 이게 자연이 주는 거. 우주가 주는 거를 그냥 받아들이는 방식인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전시 몇 년째 계속 보면서 제가 얻어 가는 가장 큰 저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드리고 또 한 가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흘 할머니들 간식이 만나서 가슴이 달락달락 했겠다, 아 부럽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세정 : 안녕하세요, 아유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 앞에서 제가 갑자기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냥 드리고 싶은 말씀 얘기는 너무 어 부끄럽게 게으름을 피우고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진짜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가시고 이렇게 큰 그림들이 연도가 2025년도 뭐 얼마 안 되신 거잖아요? 이렇게 그려내신 게 그냥 눈으로 봐도 너무 어마어마한 거예요? 저는 입힌 게 저 핑계 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근데. 아 너무 감동하였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많이 그림 많이 그려주시면 또 많이 배우려고요.
정선애 : 서너 번은 더 봐야 할머니들이 그린 장면이 이해가 되겠다 이런 생각 드는데 저는 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이 예를 들면 이제 관식이가 나중에 아파서 죽음을 앞두고 있잖아요. 그래서 애순이가 “힘들게 살았지만 외로운 적은 없었다. 단 한순간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사실 되게 외로운 게 많은 시절인데, 할머니들 옆에 할머니가 있어서 안 외롭고, 할머니 옆에 그림 선생이 있어서 안 외롭고 그림 선생 옆에 선녀(선흘여성)들이 있어서 안 외롭고 여기는 어쨌든 안 외롭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참 좋습니다.
김진선 : 저는 이 마을에서 오년째 아이 키우고 있는 진선입니다. 드라마 봤는데 너무 감동적인 그 이야기였고 친정 부모 생각도 많이 나고 너무 많이 울어서 정말 이렇게 YouTube에서 우리가 누가 휴지를 이렇게 붙이고 있던데 그게 너무 이해됐어요. 그래서 이제 그거 보면서 저거 우리 삼촌들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얼마 지나고 나서 맨 처음에는 오프더 레코드였던 것 같더라고요. 딱 릴리즈 되자마자 우리 마을의 삼촌들이랑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마을에 마법 같은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거 같아서 이제 제가 남편에게도 보라고 했더니 그게 그렇게 슬프냐 묻길래 뭐 여자의 감성과 또 남자의 감성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한번 봐라 이랬는데 저쪽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갔더니 보면서 울고 있는 거예요. 우리 삼촌들 그림 대작을 많이 그리셔서 좋고요. 작년 12월에 그림 전시하고 불과 몇 개월 안 됐는데 그때랑 다르게 그림도 너무 멋져지고 점점 너무 실력도 감성도. 예술적인 마음도 너무 하루하루가 늘어나는 것 같아서 너무 감동적입니다. 우리 삼촌들 보니까 저도 항상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라는 생각하면서 항상 열심히 살아요.
이세정: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선흘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2023년 전시 때 직장 동료와 전시를 보러 왔었고 동료가 작품을 한참 보다가 나 근데 자꾸 눈물이 나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 나도 이렇게 하면서 눈물 나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할머니들 팬이 되었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 전시하실 때마다 이렇게 막 와서 응원하고 보곤 했는데 이번에 폭삭 속았수다 제작진과 협업하시는 모습들 유튜브로 보면서 너무 뿌듯했고 더 많은 사람들, 육지 사람들도 우리 작가님들 하시는 일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응원했고요. YouTube를 보면서 이제 할머니들이 아니구나, 작가님이 되셨구나! 이번에 만나면은 할머니라고 안 하고 작가님이라고 불러드려야지 했는데 진짜 오늘 보니까 달라지셨어요. 뭔가 예전에 그 모습이 아니고 진짜 작가님으로 다 거듭나신 것 같아서 너무 좋고 앞으로도 계속 오겠습니다.
조한혜정 : 이 정도로 오늘은 마무리할까요? 오늘은 우리끼리 했고 두 번째 모임은 다음 토요일 5월 10일에 무지개 미술관에서 합니다. 외부 분들 초대해서 가족과 사랑, 노동과 마을의 힘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세 번째 포럼은 5월 17일 선흘 비건책방에서 합니다. 제주, 육지,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면서 특히 두바이에 사는 작가가 줌으로 그곳 상황을 발제해 주기로 했어요. 아마도 한류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네 번째 5월 24일은 아버지들이 너무 울어서 왜 우나를 생각해 보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들을 생각해 보려고 해요. 다섯 번째 5월 31일에는 열 살 때부터 일편단심 사랑하는 관식의 지극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지금 많은 청년이 결혼은 안 하지만 스타를 지극히 사랑하고 돌보죠. 팬들이 스타를 추앙하듯 관식이 애순을 추앙한 것 아닌가? 그 사랑은 에로스와 아가페적 사랑 어딘가에 있는가? 이런 질문도 하면서 제주와 한국 사회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장소는 비건 책방입니다. 이야기하다가 재미난 주제가 나오면 포럼을 계속할 수도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이런 일이 쉽게 이루어지니까요.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