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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의 소리

[기사] 제주 선흘그림할망 “새벽 장닭, 무지개호랑이 보레 옵써”

《헤아릴 수 없이 많은—기막힌 신들의 변신과 공생》 2부 전시

자연에서 탄생한 반려그림‧조각 선봬…11월 8일~12월 21일까지


 무지개할망 고순자 作 <백두산 호랑이>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무지개할망 고순자 作 <백두산 호랑이>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최고령 96세부터 최연소 76세, 평균 연령 86세 아홉 명 ‘그림할망들’이 가을과 겨울 사이 다시 한번 신(神)들린 전시를 연다.

전시 제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기막힌 신들의 변신과 공생》이다.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형식으로 선흘 그림작업장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지난 9월 20일부터 내년 3월 29일까지 이어지는 총 4부 중 2부 전시로, 11월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매주 금‧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선흘 그림작업장(제주시 조천읍 중산간동로 1290)에서 진행된다.

2부 전시 오프닝은 11월 8일 낮 12시.


제주 선흘 그림할망들의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2부 전시가 11월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선흘 그림작업장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제주 선흘 그림할망들의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2부 전시가 11월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선흘 그림작업장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할망들의 자유자재한 붓질은 학교가 아닌 산과 바다, 그리고 밭이라는 자연에서 배운 솜씨다.

산과 바다는 물감이 되고, 화산토의 밭은 훌륭한 팔레트가 됐다. 평생 농사로 굽고 거칠기만 한 할망들의 손은 훌륭한 예술가의 연륜이다.

붓과 조각칼은 그저 작품 도구일 뿐, 그 손의 기억은 호미와 삽, 곡괭이와 쇠스랑에서 자라난 갖가지 씨앗들을 미술작품으로 환생시켰다.


할망들의 작품은 늘 창의적이다.

새벽 괘종시계 같은 장닭 울음이 새벽을 열면, 이슬 머금은 로즈마리가 천리향처럼 번지고, 공룡과 개구리까지 우체부처럼 그 향을 실어 나른다.

고목낭할망의 말똥에서는 버섯이 톡톡 피어오르고, 소막할망은 소라게의 집을 잠시 빌려 바다를 누빈다. 진주조개 속에는 신나는할망의 이층집도 반짝이며 불을 켠다.


무지개호랑이도 조랑말과 한바탕 춤을 추어 빛의 줄무늬를 하늘에 걸어 둔다.

우라차차할망은 타조 셋과 사막의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고, 얼룩배기는 땅의 무늬를 등에 지고 숲을 건너간다.

무화과나무 위의 아이가 내려다보는 세상에는 그림할망들이 내린 미션을 품은 공룡들까지 등장해 마을의 신화를 기록한다.

고목낭할망 김인자 作 <늘근버섯 천지만지>,캔버스에 아크릴, 145.4x106cm, 2025 ⓒ제주의소리
고목낭할망 김인자 作 <늘근버섯 천지만지>,캔버스에 아크릴, 145.4x106cm, 2025 ⓒ제주의소리

우영팟할망 김옥순 作 <장닭> 나무조각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우영팟할망 김옥순 作 <장닭> 나무조각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로즈마리배달부, 말똥버섯, 소라게, 진주조개, 무지개호랑이, 우라차차타조, 얼룩배기, 장닭, 나무위의 아이….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그림과 조각 작품들이다.

제주 중산간마을의 역사와 노동의 가치가 도장처럼 새겨져 있는 할망들의 화폭이다.

생을 통째로 견디며 배운 자유, 그 자유가 붓끝에서 언어가 되고, 언어가 다시 신화가 된 작품들이다. 그 속에서 ‘잘 그린’ 또는 ‘잘 만든’ 작품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삶을 보게 되는 전시다.


할망들의 그림 선생 최소연 예술감독은 “선흘 그림작업장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반려그림과 반려조각 작품은 할망들의 성심이 담긴 수호자, 용감한 가디언”이라며 “공생이 ‘서로의 삶을 바꿔나가며 함께 존재를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듯, 이 반려그림과 조각도 우리에게 힘과 위안을 건넬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또 다른 묘미도 기다린다. 11월 8일 낮 12시 전시 오프닝에서 선녀합창단의 축하 무대도 예정됐다. 이후에는 ‘그림할망 밥상’이 차려진다.

할망들은 “괴기 삶고 국수 비비고 할거난 많이 옵서양! (고기 삶고 국수 비비고 하니 많이 오세요!)”이라 초대한다. 화실에 할망들이 차린 식탁까지 마련되니 미술은 생활이 되고, 생활은 축제가 된다.

거창한 미술사의 문법이 아닌, 우리가 살아온 오래된 삶의 방식이 예술 언어로 펼쳐진다.


오가자 作 진주 조개 속 이층집_ 나무조각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오가자 作 진주 조개 속 이층집_ 나무조각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우라차차할망 조수용 作 <그림탁자> 가구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우라차차할망 조수용 作 <그림탁자> 가구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우라차차할망 조수용 作 <그림탁자> 가구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우라차차할망 조수용 作 <그림탁자> 가구에 아크릴, 2025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김봉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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